황학동 벼룩시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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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옷장, 혹은 치열한 삶의 현장. 따뜻한 아날로그의 감성을 간직한 황학동 벼룩시장 방문기.

크레딧: songdiamond

패션을 전공하는 동생이 학교 수업시간에 교수로부터 복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동생은 ‘내 어머니의 옷장’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나.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이 변하고 있지만,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은 언제나 사람들 마음 한 곳에 자리잡은 듯 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신발상자를 쌓아놓은 것과 같은 멋 없는 서울에도 이런 따뜻한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 아직 있다. 이번에 내가 로모 LC-A 인스턴트백을 들고 찾은 곳은 그런 곳들 중에 하나인 황학동 벼룩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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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벼룩시장은 동묘앞역에서 시작해 청계천을 건너 성동 공업 고등학교 주변의 길에 줄기줄기 걸쳐져 있다.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길은 가장 오래된 것들과의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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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앞역에 내려서 동묘 옆으로 나 있는 큰 길을 따라 황학동 벼룩시장은 시작한다. 근처에 오면 항상 북적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이 곳을 놓칠 수 없다. 초입부터 길 양쪽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노점들과 구경꾼, 흥정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참고로 동묘는 특이하게도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시는 묘당이라고 한다. 종묘처럼 왕실과 관련된 곳 인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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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면 으레 이런 물건들의 ‘더미’를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정말로 이것들을 팔려고 내어놓은 것인지, 아니면 버리려고 잠시 보관해둔 것인지 헷갈릴 만큼 세월의 손때가 그대로 묻은 물건들이 넘쳐난다. 보고 있으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물건들이 흘러 들어 왔을까 싶을 정도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세상을 돌고 돌던 물건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장소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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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제대로 된 흥정을 하려면 돈보다도 안목이 있어야 한다. 싼 것에는 싼 것대로의, 비싼 것에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핵심을 한번에 알아보지 못하면 바가지를 쓰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쓰레기를 주워 오기 일쑤. 오고 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흥정이고, 날선 기싸움이다. 한 마디만 허투루 했다가는 바로 얕잡아 보이게 된다. 가끔 신기한 물건을 보고 뭐냐고 물었다가 ‘한번에 척 봐서 모르면 영원히 모르는 거니 그냥 가라’ 소리까지 듣게 된다. 물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팔 수 없다는 소리도 되겠고, 입씨름 해봤자 안살게 뻔하니 그냥 가란 소리도 되겠다.

크레딧: songdiamond

로모 LC-A 인스턴트백으로 열심히 이것저것 찍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찍고 필름을 뽑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는데 척 보더니 대뜸 그거 카메라에 즉석사진기를 붙힌거냐고 물어왔다. ‘폴라로이드’, ‘인스턴트’ 따위의 말을 쓰진 않았지만 그분은 신기하게도 한번에 척 알아봤다. 그러면서 자신도 비슷한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며 부시럭 부시럭 위의 저 녀석을 꺼내 보여주셨다. 신기하게도 로모와 쏙 닮아 있는 녀석이라 핸드폰 카메라로 담아 왔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엄청나게 오래된 모델에, 놀랍게도 (좋게 말해)로모의 모태가 된 제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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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마구잡이 잡상인들의 집합소가 아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가게 마다에 특징이 있고, 길에 널어 놓고 파는 물건에도 주인의 취향이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시장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타인의 취향’의 상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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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앞에서 시작한 상점들은 청계천을 지나 성동 공업 고등학교옆 길, 신당역까지 뻗어있다. 골목 마다 특징이 가득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주말에는 몸을 돌려가며 골목길을 지나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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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역시 골목마다 들어선 카메라 상점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벌써 여러 대의 카메라를 샀고, 몇 번을 다니다 보니 나를 알아봐주는 단골집도 생겼다. 이곳에 갈 때는 정신 바짝 차리고 아는 물건도 꼼꼼히 정보를 다시 찾아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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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라면 또 먹을 것이 빠질 수 없다. 이곳에 올 때면 늘 먹는 팥앙금 가득한 도나쓰(이렇게 부르는게 더 어울린다)와 진한 다방커피 한잔! 커피 파는 아주머니가 2:2:2의 황금비율로 기가 막힌 손놀림으로 타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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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네이밍의 간판이 아닐까. 20대에 쓰던 물건을 80대가 되어 다시 찾게 되는 곳. 오래된 물건과 싱싱한 감성이 만나는 곳.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최첨단의 ‘쿨’하다고 생각하는 아이패드 등의 기기들이 30년이 지난 후엔 이곳에서 그것들을 썼던 경험을 가진 우리들에게 어떤 ‘향수’를 일으키게 될지.

골목골목 뻗은 길을 누비다 보면, 신당역 앞에 도착하면서 이 일종의 시간여행은 끝나게 된다.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남의 화려한 불빛으로만 대변되는 수도 서울에도 오래된 감성을 가진 곳이 아직도 존재하고, 또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오래된 물건들을 팔아 생활하는 갖가지 사람들을 마주하고 나면, 지금의 삶과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흔히 서울을 일컬어 ‘500년 수도’라고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 100년 이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이곳이다. 간신히 남은 고궁들을 제외하면, 모두 들어내지고 고쳐졌다. 막걸리향 가득하던 피맛골은 멋없는 신축 건물에 가둬졌고, 시청 청사도 일제의 잔재라고 다시 지어지고 있는 중이다. 건물을 없애면 역사가 없어지는가. 우리는 유독 ‘새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나는 유럽의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그들의 옛것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소중히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 넘겨 줄줄 아는 정신이었다. 이것은 ‘관광 특구’, ‘볼거리 개발’같은 싸구려 단어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자 문화이다. 황학동에 가득한 ‘할아버지의 옷장’이 보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뽀오~너스!

크레딧: songdiamond
황학동 벼룩시장의 끝이자 시작인 신당역에 2014번 초록색 버스를 30분쯤 타면 뚝섬 유원지로 바로 갈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요즘, 멋진 주말 데이트코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뚝섬 유원지에서는 ‘Coffee the Sol’이라는 멋진 카페도 만날 수 있다.

written by songdiamond on 2011-05-31 #places #flea-market #seoul #location #cityguide # # #songdiamond #hwanghak-dong # # #lc-a

One Comment

  1. kdh50000
    kdh50000 ·

    서울 살면서도 잘 모르던 곳인데 가보고 싶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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